탄핵 이후 세대를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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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섭 (비정규교수노동조합 대구대분회)
‘청년 극우’의 등장?!
최근 대학가에는 윤석열의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가 시도되고 있다. 집회를 개최하지 않은 대학에서도 그런 탄핵 반대의 목소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 한 대학의 에브리타임(대학생 커뮤니티)에도 서울대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알리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윤석열이 하는 탄핵 반대의 모든 주장을 세세하고 동일하게 주장함으로써 윤석열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였다. 이 글 아래에 달린 댓글 다수는 탄핵 반대에 동참한다, 공산화에 반대한다느니, 중국이 싫다느니 등이다. 그 중의 가장 많은 공감이 달린 댓글이 ‘짱깨 꺼져’이다.
물론 이런 극우적 목소리가 다수 학생의 의견은 아니다. 이러한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재학생이냐는 의심도 든다. 대학가에서 개최되고 있는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가 소수의 학생과 다수의 외부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이렇게 추측하는 근거이다. 그런데도 걱정스러운 점은 더러 이러한 선동에 찬성하거나, 객관적 판단인양 이러한 선동에 동의하려 한다는 점이다. 무시해서는 안 되는 흐름이다.
지배계급의 지배적 사상, 자본주의 경쟁교육을 통해 관철
극우집회의 연단에 20, 30대 남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정선거 외에도 여성을 공격하고 공산화를 걱정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성의 공격과 공산 세력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의 불안은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이는 사회 구조적 산물로 다각도의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여기서는 교육현장에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한국의 교육은 이들의 불안을 부추긴다. 초중등 교육의 목표는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의 인격 도야,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 실현’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네 가지 교육과정 중 첫 번째는, “전인적 성장을 바탕으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진로와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기주도적 사람”이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이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다양성을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으로서 배려와 나눔, 협력을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이다.
우리 시대 초중등 교육은 공동체의 가치보다 자신의 진로, 삶을 우선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본주의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삶을 위한 ‘자신 주도적’ 사람으로 성장해 왔다. 자본주의적 경쟁교육은 공동체보다 자신을 지키도록 하고, 함께 살기 위한 변화를 기득권에 대한,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경쟁교육은 승자독식이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경쟁이 곧 공정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임금노동자 수는 2,214만명이고, 그중 38%에 해당하는 846만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플랫폼,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증가했다.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고 있고, 최저임금 이하의 아르바이트 자리가 넘쳐나고 있다. 대구, 경북 대학가에는 최저임금 10,030원을 보장하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거의 없다고 한다. 이어 대해 항의하는 학생은 업주 간에 이 사실이 공유되어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학생은 항의도 못 하고 최저임금 이하의 일자리를 감수한다. 모든 학생이 부당하다고 느끼겠지만, 모두 다 분노하지는 않는다. 이는 지금 세대가 타인에 무관심해서만은 아니다.
대학생들이 최저임금을 토론할 때면 항상 노동자와 자본가의 입장이 서로 동등하게 제시된다. 본인이 현재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든, 졸업 후 곧 노동자가 되든 상관이 없다. (개중에는 실재적으로 자본가의 입장이어야 하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은 최저임금과 관련된 두 입장을 기계적 평등이라는 시각으로 다루는 것을 객관이자 공정이라고 본다. 이런 시각에서는 탄핵 반대도 객관적 주장으로 볼 여지가 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교육은 경쟁이 공정이고, 공정이 곧 경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따라서 경쟁 과정이 없는 사회적 불평등 해소과정은 불공정하다고 인식한다. 2018년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엄청난 특혜라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었다. '인국공 사태"로 불렸던 이 사태는 비정규직을 없애자는 상징성에 불과했지만, 경쟁없는 특혜라며 엄청난 공격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이때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 중 30% 이상이 과도한 업무와 여전한 박봉으로 1년 이내 퇴사했다고 한다) 경쟁이 노동의 가치나 노동인권, 인간의 보편적 권리, 공동체의 가치를 뒷전으로 몰아내고 있다.
노동 교육, 미래세대를 위해 절실한 교육
미국 포보스는 윤석열의 계엄령 시도로 한국 국민 5,100만이 할부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경제적 후퇴와 더불어 민주주의 또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한국 사회의 30%를 대변하던 보수는 극우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더 이상 상식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권력 경쟁은 기대하기 어렵다. 탄핵이 이루어지고 대선으로 새로운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지금 벌어진 틈을 한순간에 메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의 경쟁교육은 이러한 틈을 메우기는커녕 그 간극을 더욱 벌어지게 할 것이다. 경쟁을 최우선으로, 경쟁을 공정의 조건으로 가르치는 경쟁교육은 공동체를 해치는 혐오와 또 다른 윤석열을 낳을 것이다.
탄핵 이후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러한 분열을 봉합하고 무너진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사회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경쟁만이 최고의 가치인 양 내세우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조차 노동과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해야 성장할 수 있다.
노동자 없는 자본가는 존재할 수 없고, 노동자의 피·땀으로 자본주의는 유지된다. 국민의 절반이 노동자이고, 적어도 나머지 반의 반은 노동자의 가족이다.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국가는 곧 국민이 주인인 국가이다.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고,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기존의 경쟁교육으로는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없다. 새로운 세대가 잘 살고, 국가의 주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절실한 교육이 바로 노동 교육이다. 경쟁교육을 압도하는 노동 교육은 ‘국민’을 진짜 주인으로 안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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