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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한국전쟁의 도상연습 진주만기습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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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신문
2025-02-06 07:33 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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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수수께끼로 불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필자가 보는 최대의 미스터리는 무엇보다도 6월 25일 새벽의 전면적인 남침을 몰랐다는 것이다전쟁에 관한 최고의 경전인 손자병법에는 용간(用間즉 간첩의 이용은 전쟁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며 전쟁의 결정적 승패를 좌우한다고 했다당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전쟁을 치른 직후라 정보기관의 수준은 세계 최고였다그런 미국의 정보기관이 38선 근처에 소련제 탱크 수백 대를 집결시키고 일거에 내려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어불성설이다.


1945년 10월 1일 미국이 전략국을 해체하고 1947년 9월 18일 중앙정보국을 창설했다미국은 애치슨 라인을 선포하고 1949년 6월 30일 비전투 요원만 남기고 주한미군을 철수했다맥아더는 월로비 소장이 이끄는 정보참모부(G2) 산하에 KLO 부대와 캐넌 중령이 이끈다고 하여 캐넌 부대(일명 Z기관)’라고 불린 첩보 부대를 두어소련과 북한의 움직임을 감시했다또 미국 공군 첩보 부대인 ASIS도 한국에서 첩보 수집을 하게 되었다월로비 소장은 이러한 첩보를 정리해 워싱턴으로 보고서를 무려 1195건이나 보냈는데 전면 남침이 임박하였다는 정보보고였다그런데도 워싱턴은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이 문제와 관련 시사점을 주는 다큐가 있다. 2019.03.17. JTBC에서 미국방송제작 다큐를 방영했는데 진주만 공습의 비화를 다룬 다큐이다당시 태평양함대 총사령관 킴멜(Kimmel)제독이 일본기습에 대한 대처 잘못으로 강등되자수십년에 걸친 법정투쟁 등 명예회복 투쟁 과정에서 백악관과 군최고지휘부가 일본군 기습을 알고도 기습을 유도했음이 사실로 드러난다소위 음모론과는 격이 다른 명작 다큐이다.


왜 미국은 1941, 1950년 두 번이나 적의 전면 침공이 예측되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진주만 기습전에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은 거의 불가능했으나 진주만 기습 한방으로 압도적 찬성 속에 전쟁 참가와 군수산업의 대대적 확장이 나타났다그러나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군수산업 폐업으로 공황에 처했으나 한국전쟁 한방으로 군수산업 부활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1945년 미국 국방예산 990억불전쟁 끝난 첫해인 1946년 120억불한국전쟁 발발 후 550억불). 수수께끼의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2023.10.9. 전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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