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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임을 위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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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신문
2025-02-07 02:37 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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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용 (소리꾼)

*9월 28김제 집강소에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노래로 듣는 한국현대사’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 글은 강사 우지용(소리꾼)동지의 강의 원고 일부입니다긴 원고를 보내왔으나 한정된 지면 관계상 한 꼭지만 싣습니다. - 편집자 주

   

1980년대는 군부독재 타도민주화운동교육민주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절이었다시위나 집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백기완 선생의 묏 비나리 (1980년 12)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서 가사를 만들었다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5.18 기념식 때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들과 함께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을 때 군악대가 이 곡을 연주해서 화제가 되었던 일도 있었다군악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이 노래는 나중에 대만과 홍콩캄보디아필리핀캄보디아 등 아시아의 민주화 운동가나 민권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불려져 아시아 민중가요로 정착되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82년에 제작된 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빛의 결혼식>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서 목숨을 잃은 윤상원(당시 30세 시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과 노동현장에서 죽어간 박기순(당시 21)의 영혼결혼식을 담은 노래굿이다이 노래는 빛의 결혼식에서 윤상원과 박기순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작곡되었는데두 열사가 지금 우리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라고 부르는 마지막 구절이 더할 수 없는 비장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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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의 빛윤상원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진군해 오는 계엄군처럼 망설임 없이가난한 예술의 도시 광주를 뒤덮어 오고 있었다연민의 시간이었다서른 살의 청년 하나가 한 무리 고등학생들과 여대생들 앞에 서서 말하고 있었다.
이제 여러분은 집에 돌아가십시오가서 여러분이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여러분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우리들의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기 바랍니다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계엄군이 밀려오기 전에 어서들 도청에서 떠나기 바랍니다.”

1980년 5월 23~24일 상황을 알리는 한국 주재 외신 기자 서신
<르몽드기자가 물었다.
협상의 여지는 없습니까?”
일부 수습위원들이 군과 협상 중입니다만 성과는 전혀 없습니다계엄군은 무조건 무기 반납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협박만 일삼는 그들과 무슨 협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볼티모어 선기자가 물었다.
우리 같은 외부인의 눈으로 볼 때계엄군은 시내로 진격해서 광주를 탈환할 수 있는 압도적인 화력을 갖고 있음이 분명합니다대학생 투사들의 무장은 계엄군에 비하면 보잘것없는데저항하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아니면 항복할 겁니까?”

윤상원은 그 인상 깊은 눈으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리고 엷은 미소를 띤 채 짧게 답했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죽음은 밤의 어둠이 걷히기 전에 이들을 덮쳤다. 1980년 5월 27일 새벽이었다도청 건물 2층 민원실에 남아있던 윤상원은 복부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들불야학의 꽃 박기순

전남 보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난 박기순은 노동자농민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따뜻한 마음의 처녀였다전남대 국사교육과 3학년 재학 중이던 이해 봄부터 광천공단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 준비에 앞장서고 있었다광천동 천주교회의 교리실을 빌리고 들불야학이라는 이름도 그녀가 지었다.

늦게까지 야학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고 방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다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방문 틈으로 스며든 연탄가스에 중독된 것이다박기순의 죽음은 광주지역 민주화 운동권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장례식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가수 김민기가 선창하는 <상록수>를 따라 부르며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저 들판의 소나무처럼 푸르렀던 그녀의 삶을 애도했다.


빛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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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이 사망한 지 2년이 되어가던 1982년 2월 20군사독재의 폭압처럼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광주항쟁으로 사망한 이들이 묻힌 망월동 공동묘지에서는 특이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박기순과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이었다.

양가의 가족 친지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눈물로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영혼의 결혼식은 노래극 <빛의 결혼식>으로 절정을 이뤘다특히 맨 뒷부분에 나온 <임을 위한 행진곡>은 비장하면서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으로 참석자들의 기억에 남았다.

패배할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싸웠던 광주항쟁의 주인공들을 기리는 노래극 <빛의 결혼식>은 언론도 출판도 통제된 1981년 봄문화행사를 통해 광주항쟁의 진상을 알리자는 뜻으로 뭉친 광주지역 문화인들에 의해 창작되었다.

마지막을 장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과 박기순으로 상징되는 주인공 남녀가 영혼결혼식이 끝나고 자신들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산 자들을 격려하고 투쟁을 독려하는 내용으로 살아남은 이들에게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노래였다.

경찰의 감시를 피해 황석영의 집 밀폐된 골방에서 이동식 카세트 녹음기를 이용해 조악하게 녹음된 노래극은 이날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공개되었다이후 녹음테이프에 복사되거나 악보만으로혹은 구전으로 전국으로 번져 나가 민주화 운동권에서 제2의 애국가처럼 불리게 된다.

오랫동안 재야에서 불리던 묏비나리는 1990년 시집 젊은 날에 실림으로써 정식 출판물로 수록되었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1991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 음반에 공식적으로 실리면서 불법’ 딱지도 떼게 되었다.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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