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통해 본 계급혁명의 조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본문
박찬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동네는 낙원구 행복동이다. 모두가 행복를 찾던 행복동, 모두가 가고자 했던 낙원은 한쪽에게만 열린 문이었다. 다섯명 가족의 빈곤한 삶을 하나로 묶어 주던 난장이 가족의 작은 집은 철거를 당했고 그 순간부터 가족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난장이 가족은 높다란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구름을 대신하던 은강시로 이사를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집을 나갔던 딸 영희는 가족이 살던 곳을 되찾기 위해서 철거된 집을 찾았다. 사는 곳은 달랐지만 같은 행복동의 이웃인 신애 아주머니가 난장이 가족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아버지는 공장 굴뚝에서 더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갔다. 영희는 작은 오빠 영호에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라고 말했다. 은강그룹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큰 오빠 영수는 살인을 선택했다. 그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삶을 마감했다.
1970년대,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점을 잘 드러내 준 이 소설은 1978년 초판이 발행된 후 46년 만에 150만 부가 팔렸다. 경향신문은 이 소설이 “광고 또는 홍보, 작가의 유명세 등의 영향 없이 꾸준한 판매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나는 이 기사를 접하면서 [난쏘공]이 무려 46년 만에 고작 150만 부가 팔렸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1970년대 농촌의 분화, 그로 부터 형성된 도시 빈민과 저임금 공장 노동자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한국 노동계급이 떠나왔고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어진 고향과도 같다. 한국의 노동자는 2023년 8월 기준 2,195만 4천 명에 달하며 전국 인구의 90.7%가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 노동자계급은 인구에 있어서 절대적 다수를 차지한다. 노동자 계급은 정치·사회적으로 유력한 집단이 되었고 그들의 투쟁은 46년 전의 처지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 이 소설에서 표현된 “일만 년 후의 세계”는 만들지 못했다.
이제 많은 이들이 빈곤을 주제로 한 계급투쟁은 낡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원동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상대적 욕망 속에서 싸우며 갈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것은 체제가 만들어낸 현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 비난하고 싸우기 보다는 양보와 타협 속에서 체제를 바꿈으로써 모두가 지옥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낡아버린 계급적 분노를 담고 있는 소설은 고작 그 정도의 판매만을 기록했을 뿐인가 보다.
하지만 그들 주장은 사실일까? 정치적 대립과 사회적 불안을 낳는 계급적 분열 상태는 중산층의 존재를 통해서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과 비교한다면 절대적 빈곤층이 다수 존재 했던 70년대 조차도 거짓된 희망으로 환상을 쫓는 중산층을 만들었다.
소설에서는 당시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설문조사를 인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아껴 쓰면 누구나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1970년대 당시 사람들은 “그렇다. 41.3%, 어느 정도 그렇다. 21.5%”로 답하고 있다. 다수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를 소설에서는 ‘거짓 희망’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국내 경제 규모가 고도성장의 여지가 있는 경우, 중산층을 위한 좋은 일자리는 늘어나게 된다. 집단으로서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하층으로서 짓눌려 있을 때조차도 개개인에게 열린 기회를 통해서 누구는 중산층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 전체로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개인의 경쟁과 부를 위한 노력은 일상적인 일이다. 다수의 대중이 가지는 생활 향상에 대한 희망은 고도 성장을 향해 발돋움하는 70년대 한국 자본의 성장에 대한 대중적 반영이다. 그러나 중산층은 일정한 경제 성장의 규모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한정된 기회이기 때문에 모두가 그 낙원에 들어 갈 수는 없다. 누구나 잘살 수 있다는 바람은 거짓 희망이었다.
오늘날은 다른 의미에서 더 절망적인 상황이다. 사람들은 낙원구 행복동의 문이 닫혀 버렸다는 것을 안다. 고용 안정성과 중위소득 이상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인 국가기구의 공무원, 공공기관, 대기업의 고용은 예전과 같이 늘어날 수 없다. 자영업자, 중소상공인의 상위 30%는 예전과 같은 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지만 나머지는 공과금, 이자, 월세 비용의 상승으로 인하여 아래로 부터 차근차근 한계상황을 맞이한다. 낮은 노동소득과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처지나, 하층 자영업자의 처치는 다를 바가 없다. 다수가 위로 올라갈 수도 없는 채, 차오르는 물을 지켜보고 있다.
사회적 불만으로 꽉들어 찬 압력밥솥과 같은 사회상태는 어떠한 형식이든 또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간에 터져야만 한다. 그러한 계기를 통해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지 아니면 질식상태가 얼마간 더 계속될지는 사회적 다수를 차지한 중하층의 정치적 태도에 달려 있다. 중산층은 현재의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민주주의 투쟁에 적극적이다. 대부분의 당파가 이들을 대변하고 있다. 반면 민주주의 투쟁에서 무산자의 깃발을 들고 그들의 사회적 요구를 대표하는 정당은 부재하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무산자층에게 ‘거짓 희망’을 부추기며 그릇된 정치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
이렇듯 현재 경제 정치 상황이 요구하는 바는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며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시대와 구체적 상황을 달리 하지만 46년 전의 소설 [난쏘공]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자신들의 계급혁명의 단편들을 보여주었다. 노동운동을 탄압한 그룹 사장의 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큰 오빠 영수 뒷편의 어린 여공들은 한 없이 눈물을 흘렸다. 영희는 작은 오빠 영호에게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악당들과 맞설것을 종용했다. 신애는 남 보다 빨리 물을 받을 수 있다는 난장이의 말을 믿어 주었고 그를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맞서 칼을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저희도 난장이랍니다는 말을 남겼다.
이들 모두가 살아나야 한다. 희망을 짓밟는 낡은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기 위해 치켜 세운 깃발아래 하나가 되어야 한다. (202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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