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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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배
강대국의 패권은 “한밤중의 도둑처럼 급작스레 무너질 수도”(시빌라이제이션, 471쪽)있다. 하버드대 금융경제사 교수 니얼 퍼거슨이 한 말이다. 팍스 로마나도 팍스 브리태니커도 서서히 붕괴한 것은 아니다. 갑작스럽게 힘을 잃고 쇠락하였다. 물론 쇠락의 징후는 있다. 쇠락의 징후는 세 가지 정도이다. 빈부격차의 확대, 경제적 정치적 헤게모니를 상실, 무소불위의 군사력이 피억압 세력의 비대칭 전략에 크게 흔들릴 때.
먼저 첫 번째로 빈부격차의 심화를 살펴보자. 내부 빈부격차 확대 등 불평등이 심화되어서 사회 통합력에 심각한 금이 가면 사회는 활력을 잃고 분열과 무기력의 늪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른바 마태원리이다.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13장 12절에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고 적혀 있다. 트럼프 등장 이후 미국 사회의 분열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제국은 타살이 아니라 자살로 죽는 것이다.
로마는 천 년이나 지속된 인류 역사에서 가장 견고한 제국이었다. 로마공화정 초기 최상류층 1%의 재산은 많아야 평균 로마 시민의 20배 정도로서 빈부격차가 거의 없다고 할 만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알프스의 산을 넘어 파죽지세로 로마를 공격했다. 칸나이 전투에서 한니발에 맞서 싸우다가 로마 원로원 의원 3분의 1이 죽어 나갔다. 그럼에도 로마는 쓰러지지 않았다. 귀족들의 희생이 로마군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들을 이길 때까지 싸우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기 400년경 로마 제국이 붕괴하기 직전 부의 불평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대다수 시민은 귀족의 소작인이 되어 있었으며, 귀족들은 일반 평민의 약 20만 배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마태 원리가 작용하여 귀족들이 탐욕을 채웠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귀족들은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병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병들은 로마를 지켜내지 못했다. 5세기쯤 게르만족의 공격을 받고 로마는 멸망했다. 빈부격차로 인해 사회적 결속력은 사라졌고, 탐욕의 늪에 빠진 귀족들에게는 자기 재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은 왜 다른 선진 민주주의국가보다 빈곤율이 더 높을까? 왜 미국인 중에는 기초 필수품도 없이 생활하는 사람이 그토록 많으며, 왜 그들을 빈곤의 고난에 살도록 계속 내버려 두는 것일까? 미국의 빈곤율은 지난 50년간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동안 빈곤은 왜 줄지 않았을까?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보수주의자들의 복지정책 때문일까? 아니다. 주된 이유 중 하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정부 원조가 그들에게 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시시피주 정부는 빈민 구호금인 빈곤 가정일시 부조로 집회나 교회 콘서트 비용, 전직 레슬러의 연설 및 이벤트 비용에 수백만 달러를 사용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보조금이나 사회보장 장애보험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변호사(대리 신청인)를 고용해야 하는데, 이에 들어간 비용이 2019년에만 총 12억 달러였다. 즉, 사회복지 시스템 자체가 “새는 바가지”이기 때문이다. 최대 규모의 정부 보조금은 가난에서 헤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가족들에게 가는 게 아니라, 잘사는 가족들을 계속 잘살게 만드는 쪽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자원은 적어진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전혀 없는 미국인은 3,000만 명에 이르러 가난한 집 어린이 네 명 중 한 명이 충치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기초생활의 최저선인 하루 4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미국인이 530만 명이며, 2020년 기준 미국 18인 중 한 명꼴로 “지독한 빈곤(deep poverty, 빈곤선 절반 이하 수준)”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이들은 가정폭력과 마약에 쉽게 노출되고, 주거지를 보장받지 못해 길거리나 육교 밑으로 떠밀려 살아간다. 또한 정부는 이들 수백만 명을 구치소와 교도소에 밀어 넣어 빈곤인 공식 통계에서도 사라지게 만든다. 이처럼 빈곤은 여러 사회적 병폐가 단단히 엉킨 매듭으로 존재한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과 중동으로의 확산은 세계적인 물가인상을 불러일으키고 미국 사회의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이 심화되고 있다. 제국의 자살은 이를 일컫는 말이다. (202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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