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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 일기] 국물이 흘리면 난리 나지만 라이더 피가 흐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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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신문
2025-02-06 04:05 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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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을 상점, 배달업체, 고객, 누가 알아줄까?


“자, 어플을 켜고 슬슬 일을 시작해볼까” 단건 배달이 아니라 묶음배달 방식이다. 기기에 익숙하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이다. 

음식픽업을 다하고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고객이 배달시킨 적이 없다고 한다. 아! 그럼 왜 공동현관문을 열어줬지? 

다시 앱을 확인해보니 아뿔사! 이름이 비슷한 아파트로 착각했다. 아 정신이 혼미해지고 마음이 급해진다 뒤에 배달해야할 음식이 두 개나 있는데, 시간이 지연되기에 상점, 고객의 독촉걱정에 앞뒤 안 가리고 달린다.


다행히 15분 안에 도착했다. 두 번째 배달은 어김없이 상점에서 독촉전화가 온다. 또 불안한 마음으로 스로틀을 땡긴다. 20분 만에 배달완료!

마지막 세 번째는 음식이 식었을텐데 가까스로 29분 만에 도착해서 고객께 전달하니 늦게 왔다고 혼나고 환불을 운운한다. 맨탈이 흔들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오토바이 세우고 담배 한개비 물어들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또 휴대폰을 쳐다본다. 


계속 터치하니 하나가 찍힌다. 커피 배달이다. 잘 고정하지 않으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전까지는 노하우가 없어서 쏟기 일쑤였고, 환불과 욕바가지에 배달을 계속 있을까? 라고 고민도 많았지만 쉬운 일이 어디 있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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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지에 도착하니 다행히 멀쩡하다. 고객님께 잘 전달하고 배꼽인사까지 잊지 않고 한다.  어, 근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얼른 우비를 꺼내 갈아입고, 방수 팩을 씌우고 세 개를 찍었다 우천할증 500원이 붙고 돈이 더되니 조심해서 타자고 마음먹고 픽업지로 달린다. 


첫 배달지가 주차장 바닥이 미끄럽기로 소문난 곳이다. 겁이 덜컥 났지만 조심이 들어서며 천천히 지나가는데 뒷바퀴가 미끄러지면서 오토바이와 함께 넘어졌다. 와장창창! 왼쪽 다리가 끼고 오른쪽 팔꿈치가 바닥에 부딪히며 통증이 온다.  그 와중에 음식이 걱정되어 음식부터 확인했는데, 다행히 무사하다. 혼자서 오토바이를 일으킬 수 없어 지나가는 입주민께 도움 청해서 같이 세우니 서글프다. 


통증을 안고 남은 음식은 시간은 좀 늦었지만 무사히 배달 완료했다. 상처를 치료 후 또 배달에 나선다. 문득 작년 국정감사자리에서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이 한 말이 생각났다. “국물이 흘러버리면 고객도 난리가 나고, 배달대행업체에서도 난리가 나는데, 라이더의 피가 흐르면 난리가 안 일어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유령인가?


두 번째 고객은 참 따뜻한 분이었다. 비오는 날 고생이 많다면 음료와 과자를 주며 안전 운전하라고 한다. 세상은 이래서 돌아가는구나! 우리의 노동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위안이 된다.     <2023.5.5.   이상진(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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