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가 지향하는 '민주'의 성격 > 노동

본문 바로가기

노동

민주노조가 지향하는 '민주'의 성격

profile_image
노동자신문
2025-02-07 00:05 9 0

본문

이상배 (공공운수노조 경기본부 조직국장)


민주노총을 가리켜 민노총이라 줄여 쓰거나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정부와 언론이 자주 쓰다 보니 민주노총의 조합원마저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잦다이런 경우 엄격하게 정정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노총이란 단체의 기본 방침이다이유는 민노총이란 단어가 탄생부터 불리는 대상의 비하를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문화에 한정하여개인의 성만 따서 김씨라고 부르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보통은 지위적 우위에 있는 쪽이 격식을 무시하고 상대를 낮춰 부르는 행동으로 본다단체나 집단도 마찬가지다비록 약칭이라 하여도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름을 임의로 줄이거나 바꿔 부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함이 일반적이다. ‘민노총은 이렇게 단체의 사회적 지위를 낮추고자 일부러 쓰이는 이름이다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이 있다, ‘민주노조’, 즉 자본과 정부로부터 독립된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춘 노동조합 집단의 역사와 대표성을 부정하기 위함이다.

민주노총의 설립에 이르기까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뿐 아니라그것과 궤도를 함께하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는 크고 작은 사건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정치·경제·사회·문화의 민주화를 위해 벌어진 다양한 투쟁과헤아리기 어려운 희생자의 수가 이 단어에 무게를 더한다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다과거부터 이어진 민주화()는 대체 언제 마무리되는가투쟁의 결과로 도달할 더 높은 수준의 민주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던지면 답을 두고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벌어지기 십상이다민주노총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주성의 확보에 관한 관점도 이와 비슷하다쓰는 단어가 같은데그것과 얽힌 내용은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수없이 많은 회의에서 민주성을 지키라 요구하지만무엇을 기준에 두어야 할지 아리송한 경우가 태반이다.

간단하게 단어부터 다시 확인해 보자. ‘민주주의를 영한사전에서 찾으면 ‘democracy’가 나온다반대의 순서로 찾아도 마찬가지다이상한 점은 원어가 사상의 한 갈래를 뜻하는 ~ism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심지어 democratism이란 단어는 멀쩡하게 따로 존재한다정치 제도나 사상과 관련한 다른 단어와 비교하면 더 명확해진다. republic은 공화국공화제이지 공화주의와 다르다. monarchy도 군주제지 군주주의로 번역하지 않는다이렇게 연관을 지으면 democracy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제여야 한다통치 형식을 구분하는 제도의 한 종류로 말이다이런 간단한 수정으로 그동안 간과했던 고민 지점이 잇따라 나타난다.

언어는 사용자가 속한 사회의 문화와 관점을 포함한다그래서 단어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의 본질을 바꿀 수도 있다앞서 민주노총을 민노총으로 바꿔 부르는 경우는명확하게 이것을 아는 자들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이다마찬가지로 민주제’ 대신 민주주의란 단어가 일반형으로 사용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란 의심이 생긴다하나의 정치 제도가 사상의 한 부류 오해되면 무슨 문제가 일어날까바로 객관적이고 완결할 수 있는 과제의 상실결과 없는 노력의 반복으로 인한 사회집단이 가진 동력의 낭비마지막으로 제도 자체의 그릇된 사용이다.

제도는 목적한 기능의 수행을 위한 하부 구조와 조건이 주어져야 한다당연히 충족 여부를 점검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객관화할 수 있는 기준이 드러난다이와 달리 사상은 개념의 집합이다논리에 의존하여 주관적인 해석과 주장이 먼저 제시되고객관성을 보완할 근거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미래의 일로 넘겨지기 일쑤다이런 차이를 이용하여 소수 계급인 자본가가 다수 계급인 노동자를 민주적으로 지배할 길이 열린다.

한국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선 민주제를 앞에 두고 민주주의라 읽는 버릇부터 바꿔보자민주제는 집단 의사결정의 성원 범위와 결정 방식을 다투는 것부터 시작된다자본을 상대하는 단체교섭과 정부를 상대하는 노정교섭은 노동자를 민주제 정치의 주체로 성장시키는 과정이다민주노조는 노동조합의 자주적인 운영을 통해 노동자가 민주제를 습득하고나아가 전 사회의 운영을 자본가에게서 넘겨받을 수 있도록 역량을 기르는 훈련소이다.    (2024.6.17)

 

cc2366cdcdf6f0991f3aeaa4eb61e39f_1738854306_1195.jpg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