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사태와 민주주의(2) - 노동자정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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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
4. 형식적 민주주의 복원을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 구현으로
1.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관점을 공유하는 경우에도 대안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논자의 현실인식과 지향목표, 혹은 세부 강조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차이를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단결이야말로 노동자민중의 절대 무기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란국면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차이를 좁히는 데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의미 있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내란으로 민주주의가 파괴되었다고 걱정하며 탄핵과 조기대선을 통해 민주주의가 조속히 회복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내란수괴 윤석열도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다닌다. 이 ‘자유민주주의’가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만큼이나 뻔뻔한 거짓말임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조속히 회복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 즉 내란 이전에 작동하던 민주주의가 얼마나 민주적인지도 의문이다. 보통선거를 통해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유권자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왕정이나 봉건제 사회의 권력세습에 비해 훨씬 더 민주적이다. 이는 인류가 오랜 시간의 혈투를 통해 얻어낸 권리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의미를 말 그대로 민중이 주인인 정치체제라고 이해한다면, 선출된 권력이 민중들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기존의 민주주의는 반쪽짜리 민주주의, 형식적 민주주의인 셈이다. 대의제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사회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노동자민중을 대변할 정치세력이 입법⋅사법⋅행정 등 주요 국가권력에서 전적으로 배제되고, 국가권력이 본질적으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통한 착취의 권리를 신성불가침의 절대원리로 옹호하는, 자본권력의 대리자일 뿐이라면, 한국은 사실상 민주국가라기보다 엄연히 자본독재국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근래에는 다소 퇴색했지만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노무현과 문재인이 삼성X파일을 덮어버리는 장면은 얼마나 상징적인가. 실질적 민주주의는 절대다수 노동자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인이 되는 국가, 즉 노동자국가를 통해 비로소 구현될 수 있다. 내란사태는 반쪽짜리 형식적 민주주의의 ‘회복’이 아니라 실질적 민주주의, 자본독재가 아닌 노동자민주주의 구현의 발판을 마련할 절호의 기회다.
2. 노동자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인이 되는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물을 수 있다. 우리는 그 모범적인 역사적 사례를 파리코뮌에서 찾을 수 있다. 맑스는 파리코뮌을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부’, ‘노동에 대한 경제적 해방이 이루어질, 궁극적으로 발견된 정부 형태’라고 평가했다. 엥겔스는 파리코뮌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핵심 내용이 ‘국가와 국가기관들이 사회의 종복으로부터 사회의 주인으로 변화하는 것’을 방지할 ‘절대 확실한 방책’을 강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극단적으로 구현했다는 데에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계급지배의 도구인 국가가 필요 없어지는 사회 내지 국가 사멸을 추구했다. 레닌도 민주공화제가 자본주의 유지를 위한 최선의 외피임을 비판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부르주아 혁명이 민주주의적 전환을 수행할수록 부르주아지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준다고 지적한다. 또 그는 민주주의 없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즉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통해 사회주의혁명을 준비해야’ 하고, 사회주의가 승리한 후에도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승리를 견고한 것으로 만들 수도 없고, 인류를 국가 사멸로 이끌어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파리코뮌의 사례나 이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평가, 민주주의에 대한 레닌의 강조는, 실질적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노동자국가 건설 과정에서 이념적 지표로 삼을 만하다. 그 의의는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 문제나 해방전쟁에서 국가권력이 차지하는 전략적 의의를 회피하여 국가권력 자체를 악마화하거나, 민주주의를 공허한 형식으로 만드는 자본독재의 이데올로기적 함정을 피하자는 데에 있다.
3. 한동안 조기대선을 위해 우클릭 행보를 이어온 이재명은 최근 대선 출마선언을 연상시키는 대표연설에서 ‘기본사회’를 다시 거론하면서 ‘먹사니즘’을 넘어선 ‘잘사니즘’을 표방했다. 재계가 요구하는 특정 분야 노동시간 유연화를 전제로, 그는 OECD 평균 노동시간을 근거 삼아 총노동시간 연장을 통한 노동착취에 반대하면서 주 4.5일제 내지 4일제를 내놓았다. 또 그는 공직자들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국회의원 소환제도 꺼내 들었고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박근혜 탄핵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권이 민중의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광장의 목소리를, 집권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반영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의 연설과 관련해 노동계에서는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나왔지만, ‘기본사회’나 ‘잘사니즘’을 비롯한 그의 선동구호는 노동자민중들 속으로도 어느 정도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정책기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는 노동시간 연장을 통한 착취가 아니라 첨단기술 발전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의해 이른바 파이, 즉 경제영토 확장을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공감할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시간 연장을 통한 절대적 잉여가치 착취를 억제하더라도 자본에서 착취를 떼어낼 수는 없다. 또 첨단기술 발전은 특별잉여가치를 만들어내겠지만, 그 지속성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무한 경쟁과 장기적인 유기적 구성 증대, 평균이윤율 저하로 이어진다. 나아가 경제영토 확장은 여타 제국주의 세력과의 충돌 내지 전쟁을 예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연설에서 국방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즉 이재명의 경제정책은 한국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발전을 전제로 국내의 계급적 갈등을 희석시키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이 정책이 국내외의 제반조건과 생산력 발전을 통해 제국주의적 자본독재의 근본문제들을 한동안 무마하거나 미뤄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자본의 지속가능한 효율적 착취구조를 유연하게 연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은 그의 논의 강세가 ‘억강부약’이 아니라 ‘사회통합’ 쪽으로 옮겨지는 것으로도 표현된다. 그 통합은 약자의 단결이 아니라 강자의 헤게모니 강화를 의미한다. 이재명은 민주당내에서 기득권세력과 가장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그의 정책적 한계는 자본독재의 주요 분파인 민주당의 한계이기도 하다. 노동자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독자적 노동자정치세력은 민주당의 정책적 한계를 넘어설 대안으로 노동자민중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4. 내란이 한창 진행중인 현시점에서 독자적 노동자정치세력의 확장을 위해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새력확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극우세력의 발호는 노동자정치세력의 성장공간을 축소시킴으로써, 계엄 실패에 따른 자본독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노동자정치세력은 국힘당의 극우화가 자멸의 길이 되도록 민주당과 공조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우경화하여 중도로 확장되어갈수록 노동자정치세력의 독자적 존재 이유도 확실해질 것이다. 극우세력이 이데올로기적으로든 물적으로든 성조기에 의존하는 만큼, 극우세력을 위축시키는 투쟁은 미제국주의의 간섭공작을(USAID, NED) 저지하는 투쟁의 일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최악의 파시즘이 한국사회에 뿌리 내릴 수 없도록 막는 것은 앞으로도 파쇼 집단의 주요 ‘수거’와 ‘처리’ 대상이 될 수 있는 노동자정치세력의 사활이 걸린 과제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사법부 중심 국가권력의 법치라는 무기를 유효적절하게 써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민주당을 비롯한 반-내란 정치권과의 일시적 연대 또한 꺼릴 필요 없다. 무엇보다 내란범들이 노리는 것처럼 내란이 내전으로 전환되더라도 얼마든지 조직적 연대의 힘으로 내란세력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극우 파시즘의 발호를 제압할 최선의 방법은, 노동자정치세력이 현단계 자본독재로 인한 위기 및 재앙 너머의 현실적 대안으로서, 자본독재에 매수되거나 예속되지 않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할 해방전사들로서, 노동자민중의 눈앞에 우뚝 서는 것이다.
5. 윤석열의 탄핵⋅구속⋅기소로 다소 긴장이 풀리기 했지만, 광장에는 여전히 다양한 사회적 요구들이 쏟아져나오고 계엄 이전에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정치적 열기가 흘러넘친다. 노동자민중의 의식세계와 운동문화에서 천대받던 노동 개념도 광장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민주노총에 대한 해묵은 저주는 응원봉의 물결 속에서 대체로 풀려버린 듯하다. 현장에서의 연대와 조직화도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자본독재는 민주와 연대의 긍정적 에너지를 ‘빛의 혁명’으로, ‘축제’로 흡수하고, ‘박근혜 탄핵 때처럼 죽쒀서 개줄 수 없다’는 결의까지 아무런 타격감 없이 받아낼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극우의 반란은 아무리 시끄러워도 자본독재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사회대개혁을 요구하며 모인 정당과 조직들은 대선국면과 함께 각자의 지분을 찾아 흩어지거나 집권이 유력한 민주당과 손잡고 자본독재의 효능 제고에 복무하기 쉽다. 현재의 내란국면 속에서 자본독재의 분파들과 명확히 선을 긋고 실질적 민주국가인 노동자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독자적 노동자정치세력이 노동자민중 속에 견실하게 뿌리를 내릴 공간과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관성과 통념을 넘어서는 비상한 조치가 절박하게 필요하다. 내란국면 속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효율적일지 파악하는 일이 오늘의 숙제다.
5. 독자적인 노동자정치세력 성장을 위해
1. 제국주의적 자본독재를 지양하기 위해 독자적인 노동자정치세력이 양적⋅질적으로 최대한 성장하는 데에는, 현장과 광장의 목소리들을 적극 끌어낼 뿐 아니라 그것들이 일시적 파편적 요구로 흩어질 수 없도록 사회적 의제로 정착시켜가는 일이 일차로 전제된다. 이때 제반 사회적 요구들과 자본독재 극복의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매개하여 요구들의 총체적 연관과 의미, 중요도와 시급성 등을 밝히는 것이 적극적 활동가들의 몫이다. 과학적 인식의 심화를 통해 활동가들의 선전 역량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일은 현국면에 국한되지 않는 장기과제이기도 하다.
2. 활동가 조직들이나 진보 정당들이 고립된 상태로 조직 확대를 꾀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의 노동자정치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듯하다. 현재의 위기 상황으로 인해 연합체 구성의 가능성이 조금 생겨나기도 했다. 이 연합체는 향후 선거들에 대비한 조직⋅정당들의 주도권 확장 공학이 아니라, 단결된 대안세력 조직 확대에 중점을 두어야 존재 의미를 지닐 것이다. 반-제, 반-자본독재를 위한 노동중심성은 그 출발 전제다. 이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세부적 인식과 강조점 혹은 우선순위 상의 차이들은 민주적인 논의구조를 통해 설득⋅검증⋅공감의 과정을 만듦으로써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해낼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노동자정치 연합체가 적극적 활동가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민주적이고 변혁적인 노동자정당으로 성장하여, 당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적극적 활동가들을 배출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정책을 개발⋅공유함으로써, 대중들의 지지를 넓혀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당의 성장에 따를 수 있는 개량화의 위험을 막는 것은 일차로 적극적 활동가들의 몫이지만, 파리코뮌의 근본민주주의적 조치들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조치들은 향후 노동자국가 건설 이후에도 국가권력의 작동 원리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3. 선거는 대중의 정치의식을 강력히 사로잡는다는 점에서, 노동자정치 연합체가 구성된다면 조기대선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자본독재의 대리자들과 구분되는 독자적 노동자후보의 본업은 자본독재를 지양할 대안사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노동자민중 속에 확산하는 것이다. 노동자후보는 내부 검증을 통해 이 선전 역량을 갖춰야 마땅하다. 이때 자본독재 분파들에 대한 무차별적 양비론을 내놓는 것은 노동자정치의 중요성을 선전하는 데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현재로서는 국힘당으로 집결되는 극우 내란세력의 야만성⋅반민중성⋅반민족성을 폭로하고, 그들을 최대한 위축시키는 데에 많은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이다. 민주당의 한계를 확인하는 데에는 정치선전보다 노동자민중의 직접적 경험에 의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럴 수 있는 시점은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정치 연합체의 본격적인 업무는 선거 이후에, 선거 바깥에서, 조금 유연화된 자본독재 하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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